7년간 항상 사용했던 포토샵..
나름 중급자는 된다고 하지만 체계라곤 전혀 없는 상태..
이제서야 좀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해주던 책.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봐줘야겠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해주던 책.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봐줘야겠다.
이 책을 산 이유는 딱 두가지이다.
1. 검은빛이 도는 보라색의 표지색깔이 너무 맘에 들어서
2. 뭔가 제대로 낚을 것 같은 느낌의 원제목에 반해서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타와 오역, 그리고 난무하는 번역체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음에도 재미있게 읽을만 하다.
위험하다기 보다는 뒷감당이 안되는 자유로운 사고의 정리본이다.
재미있는 생각들과 여러가지 논문과 실험들이 결합된 궤변들도 많고
근엄하고 논리적이어야만 하는 틀을 벗고 상상의 나래를 맘대로 펼친 내용도 많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각은 하나하나 재미있는데다가 설득력마저 있다.
개념을 탈피한 그들의 이론이 어쩌면 먼훗날 사실로 밝혀질수도 있겠다.
영원히 밝혀지지 않고 한 학자의 헛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왠지 귀가 솔깃한 무한한 상상력을 꺼내보여준 그들의 자신감과 논리력은 무척 매력있다.
더이상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존경심을 살짝 내보일수밖에 없다.
그간 잊고있었던 '생각한다'는 것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다시 알려줬기에...
저자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겠지만
나처럼 우리말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말을 진지하게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은 이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
그렇게 재미있는 소재도 아니고 흥미있는 글도 아니지만 은근히 책장이 잘 넘어간다.
내가 흐리멍텅하게 갖고있던 순우리말 사용에 대한 반감을
저자는 명확하게 짚어내면서 "순수한 한국어는 없다"고 말한다.
지나친 순우리말 쓰기는 '배운 자들의 잘난 척'이라고 한다.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쓰이 말보다 학자들의 주장이 앞서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점은 정말 동감한다.
이에 관련된 몇개의 칼럼과 인터넷 언어에 대한 몇몇 칼럼 덕분에
지루해 했을수도 있는 이 책을 끝까지 즐겁게 읽은 듯 하다.
교보문고에서 이리저리 책을 검색하다가 발견...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정말 모르겠다.
정부가 청구한 5,700만원을 마련하려고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기독교의 전도 정신과 배형규 목사를 기리는 뜻이 담긴 순수한 책으로 보이진 않는다.
출발전의 단체사진을 넣고 또 포토샵으로 대충 잘라서 붙여놓은 것 같은 고인의 사진..
사건이 완전히 잊혀지기 전에 뭔가 한몫 챙기려고 후다닥 만든 느낌이 너무 강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강연과 콜랭 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이진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으론 계속 명성황후를 찾게 된다.
슬픔이 묻어나면서도 잔잔하고 차분하게 이끌어주는 문장들은 너무나도 섬세하다.
자객들이 궁을 침범하고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장면에서도 피 한방울까지 천천히 하나하나 꺼내어 눈앞에 펼쳐준다.
1권의 첫부분만 읽어도 대충 이 글이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눈치챘고, 또 그대로 진행됐음에도
신경숙의 그 친절한 여성스러움에 끝까지 단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수 있었다.
역사소설과 신경숙은 왠지 안어울릴 것 같았지만 이젠 오히려 '리진' 이전의 신경숙은 기억이 나질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요즘 팩션을 계속 보는듯 하다. '바람의 화원'도 그렇고..
등장인물이 또 책을 읽는 식의 액자형(?) 구성으로 된 재미있는 소설로 풀어썼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가르침'을 위해 쓰여졌다.
그러나 이 책의 가르침은 단순히 글쓰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지금 난무하는 처세술 책들이 잊고 있는 사람이 갖춰야할 근본적인 마음가짐을 일깨워준다.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이 수두룩하여 자신의 처지에 맞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되새기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현재의 나에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음의 네가지 교훈이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럴때 비로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約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언젠가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 통찰의 순간이 오는 법.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컬어 悟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變이라 함은 지금 현실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일세.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
典이라 함은 현실에 대응하여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지만 바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동안 사후 세계에 집중했던 그가 모처럼 시작점에 관심을 가졌다.
창세기를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만든 책...'파피용'이다.
현재보다는 그 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그의 성향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인류의 종말에 2/3을 할애한 이 책은 현재라고 말할 수 있는 1200여년의 중간과정을 불과 몇 페이지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마지막의 인류의 시작도 역시 몇십 페이지에 불과하다.
간결하면서도 여운을 담고 있는 그의 문장들을 통해
화려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여지없이 발휘되었고 덕분에 책은 재미있고 빠르게 읽혀나간다.
곳곳에 숨겨놓은 암시들은 쉽게 발견되고 정답도 넌지시 알려주면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한단계 정도는 유식해진 것 같은 착각을 느낄수 있게 해준다.
영화 '혹성 탈출'이 자꾸 연상되는 파피용..
현재 인류의 미래가 새로운 행성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는 현재 인류의 '베르베르 버전의 창세기'라고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