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주로 읽었던 책은 외국의 소설이었다.
특히 시드니 셀던과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스릴러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한국 소설은 문학집에나 실리는 것들을 '의무감'에서 억지로 페이지를 넘기곤 했다.
도대체 어디가 클라이맥스인지 구분하기 조차 힘든 한국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우중충한 느낌에 촌스러운 이미지였다. 간혹 실리는 삽화는 그런 생각만 더 강하게 할 뿐이었다.
그에 비해 외국 소설은 다음 페이지가 궁금할만큼 스토리 진행이 빠르고 화려했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만 떠오르는 한국인과는 달리 피부색부터 천차만별인 등장인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쉬웠다.
게다가 낯설고 각양각색의 먼나라 자연과 도시, 문화 속의 인물들은 마치 영화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취향도 많이 달라진 듯 하다.
요즘엔 한국 소설이 더 재미있고 편하다. 글을 읽는게 재미있어졌다.
한문장 한문장, 단어 하나하나까지도 책의 구성요소라는 것을 인제서야 알았나보다.
번역된 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가마다의 독특한 문체와 어휘,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원어가 가진 고유의 맛은 번역으로는 살려낼 수가 없는 것이겠지.
한국소설을 영어로 번역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불어 책 한권을 바람같이 읽어버렸던 예전에 비해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연금술사'는 한시간 반만에 읽어치워버렸지만 '리진'은 열흘도 넘게 걸렸다.
어쩌면 사람이 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신기해 했던 어린 시절엔 하나라도 더 많은걸 보고 싶었던 것이고,
지금은 단 하나를 생각하기에도 버겁기 때문에 더 많은 것보다는 꼼꼼한 한개를 원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