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도 안피우고, 당구도 안치고, PC방도 안다녔다.
연애도 안하고, 맛있는 음식에도 관심이 없었다.
지갑을 여는 대상은 술과 CD뿐이었다.
고등학생때는 더 그랬었다. 그때는 술도 안먹었으니까.
강남역에 타워레코드가 생긴 것이 너무나 기뻤었다.
곳곳에 놓여진 CD플레이어를 통해 청음을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음악을 들으며 한두시간을 보냈었다.
약속장소는 항상 강남역이었고, 너무나도 일찍 도착해버리기가 일쑤였다.
희한하게 타워레코드에서는 CD를 서너장씩 사게 된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테이프에서 CD로 갈아탔다.
수백개의 테이프는 모두 CD로 다시 사서 모았다.
애지중지하던 워크맨(파나소닉이지만)을 서랍에 넣고,
동글동글하고 세련된 CD플레이어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대여섯장의 CD를 넣은 (흠집이 날까 한없이 부드러운 천을 안에 덧댄) CD포켓도 옆에 넣었다.
2000년대 초반, 아이리버의 mp3로 갈아타도 CD는 열심히 모았다.
그때부터는 CD를 사면 320kbps 버전으로 mp3로 변환해서 mp3플레이어에 넣었다.
mp3가 아이폰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CD를 사고, 파일로 만들어서 보관했다.
시간이 날때면 벽면을 가득 채운 CD들을 훑어보면서 꺼내어 보고 다시 정리도 해보고,
들어보기도 했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 좋았었다.
이딴걸 왜 샀나 싶기도 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다시 꽂아주기도 하고,
똑같은 CD들이 있기도 했다. 특히 메탈리카의 블랙앨범은 세장이나 있기도 했다.
고등학생때에도, 대학생일때도, 직장에 다닐때에도, 결혼을 해도
어디를 가든지 귀에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 다녔었다.
예전엔 그랬었다.
간혹 한두장은 사긴 했었지만이젠 더이상 CD를 사지 않는다. 10년도 훨씬 넘었다.
오히려 가득 채우고 있던 CD들을 죄다 내다버렸다.
그렇다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예전처럼 아이폰에 파일을 넣어서 듣는다.
오래된 파일들을 꺼내어 아이폰에 옮겨담는다.
저장해 놓은 오래된 하드디스크들도 제 역할을 못해서 거의 다 날려먹었다.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어도 나의 CD와 책들은 내 곁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었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것들은 나에게만 소중할 뿐이었다.
2년전 이사를 하면서 그들의 공간은 애들의 물건으로 채워져야 했다.
재활용으로, 당근으로 모두 떠나 보냈다.
허전함과 아쉬움, 야속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는 느낌을 그때서야 실감했다.
간혹 생각날때도 있었지만 2년동안 나는 그들이 없어도 잘 지냈다.
예전처럼 음악을 찾아서 듣지 않게 되고, 글을 읽는 재미도 줄었다.
나의 즐거움은 계속 사라지고 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덤덤해지는 나이가 된 거겠지.
예전엔 그랬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