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서 서울로 유학 온 막내이모는 왕언니의 집,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다.
무려 스물두 살 차이인 언니의 아들과는 겨우 열 살 차이였으니, 거의 누나뻘이었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도 막내이모를 거의 큰 딸같이 보살폈다.
어릴때부터 조카들을 살뜰히 챙겼던 이모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하교하면서 붕어빵이며 호떡, 순대 등 조카들 간식거리를 사들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클래식을 좋아했던 이모 덕분에 나의 음악 청취는 클래식으로 시작했다.
이미 피아노 경력이 7~8년이었으니, 고전음악이 낯설지 않았던 초등학생 꼬마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빠져들었다.
이모는 내 손을 잡고 집 근처의 예술의전당에 다녔다.
본인의 취미생활에 조카를 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달에 한두번씩 관현악단을 비롯해서 피아노 독주회 등 클래식 공연을 찾았다.
당연히 대학생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좌석을 골랐다.
무대 뒷쪽의 좌석이다.
그렇지만 난 그 좌석이 그렇게 좋았다.
남들은 모두 지휘자의 뒷모습만 보지만, 난 지휘자의 표정과 지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엄하면서도 자상하게, 강인하고 부드러운 몸짓과 눈길 등은 아무리 비싼 VIP석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연주자들이 악보 넘기는 것도 볼 수 있고, 자기 파트가 아닐때 딴 짓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연주에 열중하면서 그 속에 빠져드는 연주자들의 표정들을 보면 나도 더 깊이 음악에 빠져들어 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약간 말을 보태자면 숨소리도 들릴만큼 거리도 상당히 가까웠다.
연주가 끝나면 지휘자는 앞에 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몸짓을 멈추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럻수 밖에 없지...
그 순간이 그 좌석의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그때만큼은 나도 그 악단의 일원이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어다.
박수가 터지고 지휘자가 돌아서면서 사라지긴 하지만서도..
퇴장하면서 무대 뒷쪽의 관객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는 지휘자와 연주자들도 있다.
백건우 독주회가 잊혀지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고 여러번 인사하고 퇴장할때까지 열심히 박수치고 있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꼬마가 맘에 들었는지,
나를 가리키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잊을 수가 없었다.
연말에 아내와 합창단 공연 보러 예술의전당에 갔다.
돈 좀 써서 거의 중앙의, 무대 가까운 나름 좋은 좌석으로 예매했다.
무대 뒤의 좌석을 보니 새록새록 옛생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