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안쓰거나, 못쓰는 물건,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건지 이유조차 잊어버린 물건, 왠지 언젠가는 쓸 것 같은 물건들...
모두 내다버리고 있다.
서재방 한면을 가득 채운 CD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내 소중한 기억들인데...
인제 mp3가 있잖아. LP도 그렇게 정리했잖아.
과감히 정리하기로 한다.
CD는 재활용이 안된다고 하니 CD대로, 플라스틱 케이스대로, 부클릿대로 하나하나 분리해서 정리한다. 부클릿만 따로 모아놓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안볼 것 같다. 모아놓은 목록이라도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걸로 뭐할까 싶다.
싸인CD들도 여럿 있다. 직접 받은 것들도 있고, 초기 한정판으로 가수가 싸인한 것들도 있다. 몰랐는데 롤러코스터 앨범 중 이상순 싸인이 있기도 했다.
하나하하나 들춰보면서 이런 일도 생각이 나고, 그 당시의 일도 꼬리를 물기도 한다. 이런 앨범도 샀었나 하는 것들도 있고...
절반쯤 정리했을까...
신해철의 20주년 베스트앨범이 손에 잡혔다.
순간 눈물이 왈칵했다. 이건 어떻게 해야하지 싶었다.
이것만은 남겨두자.
다른 앨범은 모두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한동안 다른 앨범들을 분리하면서도 계속 신해철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최소한의 존경심을 남겨두고 싶었다.
넥스트도, 신해철도, 크롬도, 비트겐슈타인도... 다른 CD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쓰레기로 바뀌었다.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한편에는 CD만이, 왼쪽에는 종이만이, 오른쪽에는 케이스만 쌓였다.
몇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나와 함께했었던 음악들은 분리수거되고 버려졌다.
서재방은 깨끗해졌고, 내 마음은 어수선해졌다.
이렇게 내 젊은 날들을 말해주던 이들도 하나씩 잊혀지고 희미해졌다. 나의 열정과 애정도 시들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헛헛한 마음과 서운함도 언젠가는 잊혀지겠지. 그리움은 좀 더 오래 남겠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5,473장의 추억은 이제 하나의 앨범을 통해 떠올리게 될 것 같다.